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금요 묵상] 도망친 길에서 만난 하나님 (창16:5-16)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인간관계입니다.
아브람과 사래 그리고 하갈! 이 세 사람은 아주 좋은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관계가 <어떤 계기>로 인해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멸시와 학대까지 이어지는 아픈 관계로 전락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오늘날 우리 삶에도 불청객처럼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갈은 <임신>을 계기로 아들을 낳지 못한 여주인을 <멸시>합니다.
이 일로 아브람의 가정은 매우 시끄럽고 복잡해집니다.
여종에게 멸시를 받고 모욕감을 느낀 여주인 사래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사래는 아브람을 흔들어대며 이 모든 게 당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브람은 정신없이 쏘아붙이는 사래의 말을 듣고,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책임을 회피합니다.
사래는 하갈에게 받은 상처를 학대와 폭력으로 고스란히 하갈에게 되돌려줍니다.
하갈은 참지 못하고 결국 도망칩니다.
이 모든 시작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의 방법을 택한 것으로 인함입니다.
하갈은 주인 집을 나와 술 길 즉 수르 광야의 샘물 곁에서 웅크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주인집에서 도망나온 하갈은 고향인 애굽을 향하여 술길 광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갈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언제까지 종으로 살아야 하나?
이번 기회(아브람과의 동침)를 놓치지 않고, 여주인이 해내지 못한 일을 내가 한다면 내 인생은 새롭게 되는거라는 생각이 과연 없었을까요?
하갈은 아브람의 아이를 임신하자, 자신도 모르게 여주인 사래를 멸시하고 모욕감을 줍니다. 여주인을 향한 멸시 속에는 하갈의 욕심이 나온 것입니다. 항상 욕심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하갈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만 챙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갈도 챙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어 여주인의 학대를 참고 참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도망 나온 하갈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갈에게 질문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6장 8절입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도망 나온 하갈에게 인생의 대질문을 합니다.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다시 돌아가라고 합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합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줍니다.
첫째,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둘째,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갈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임신 중인 아이는 출산까지 할 것이며 그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이스마엘! 여호와께서 너의 고통을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만 챙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하갈도 외면치 않으시고 사자를 보내어 위로하시고 말씀을 주시면서 살아갈 길을 열어주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스마엘이 들나귀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들나귀처럼 누구에게도 쉽게 길들여지지 않고, 광야를 자유롭게 살지만, 그 자유만큼이나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계의 어려움, 관계를 이해하고 풀어내는 길은 심리학자가 만들어내는 공식이나 자기 체면이나 회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관계를 살리는 것은 무엇이 맞고,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찾아오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의 인도를 받으시는 길에 서기를 바랍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