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월요 묵상] 아브람의 이름은 왜 높이셨는가? (창12:1-9)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쾌한 월요일을 선사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 주일 말씀을 통해 <이름의 비밀>을 듣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이 <바벨을 중심으로> 모였는데, 바벨이 사람들에게 제안한 것은 <그들의 이름>을 높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하나로 모인 사람들을 모두 흩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모으고 하나게 되게 하는 일을 매우 경계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이름을 싫어하거나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없이 자기 이름을 절대화하고, 그 이름 아래 권력과 안전을 집중시키는 질서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오늘 창세기 12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놀라운 제안을 하시는데 “너는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 지금 있는 곳, 아버지의 성에 있지 말고 내 말씀을 듣고 네 안전한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곳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너의 이름을 높여 창대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창대하다는 히브리어는 גָּדַל, 가달(gādal)입니다. 크게 하다. 위대하게 하다. 높이다는 뜻입니다.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바벨이 제안한 <우리의 이름>을 높여주겠다던 공약은 들어주시지 않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거하던 아브람에겐 <너의 이름을 높여주겠다>. 위대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하면서 네가 지금 있는 땅을 떠나라 말씀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바벨은 이름을 <자기 보호>에 사용했습니다.
(창11:4)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그들에게 <이름>은 복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아니라, 자신들을 한곳에 <묶어두는 성벽>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을 흩으신 것은, 그들의 이름이 유명해지려는 마음 그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 이름 아래 권력과 안전을 집중하려는 질서였습니다.
아브람은 이름보다 먼저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먼저 “네 이름을 높여 주겠다” 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창12:1)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너의 아버지 집, 데라의 집, 메소포타미아(갈대아 우르)에서 우상 공장 공장장의 아들로 우상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가고, 우상을 팔아서 만든 돈으로 풍족하고 부유하게 살아가지만, 너는 그렇게만 살아갈 존재가 아니다!
우상이 주는 풍요로움과 안전을 네가 내려놓아라!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면 내가 너의 이름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상이 주는 안전과 풍요로움의 성안에 갇혀 있지 말고, 나와라!
네가 서 있는 자리는 말씀이 있는 자리가 아니다. 말씀(그리스도의 이름)의 반석이 아니다. 고백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이름>은 하나님의 복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이름>이었습니다.
바벨은 그들의 성안에 권력과 안전을 가두어 두려다 실패하고 흩어진 이름이고,
아브람의 이름은 자신의 풍요와 안전을 내려놓고 말씀을 따라 떠났더니 모든 민족을 살리는 <복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바벨은 자기 이름을 지키려고 자리를 붙들었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 위해 자리를 떠났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자신의 이름과 자리를 내려놓은 사람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후 새로운 이름을 부여해주시고, 아브람(이후, 아브라함)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의 통로로 기억되고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자리를 붙들기보다 말씀을 붙드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도 높여주십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