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화요 묵상] 말씀하실 때까지 (창8:13-19)

살다보면, 들어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들어가야 할 때 들어가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또 나와야 할 때 나오지 못하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때를 알고 딱 맞는 때에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방주에 들어갈 때, 그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지금 들어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주에서 나올 때도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라게!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지, 하나님도 말씀할 맛이 있지!
말씀을 했는데 듣지도 않고, 반응도 없으면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노아에게 특별히 말씀하신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은, 노아에게 말씀하실 때, 그때 들었고, 들은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때에 맞게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자주 나온다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할 맛이 나는 것이고,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누군가가 계속 듣고, 반응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말씀을 원하시면 그 말씀에 반응해보셔요~
말씀이 자주 계속 임할거예요.
...
방주에 들어가서 다시 방주 밖으로 나오기까지, 그 기간은 1년이 조금 넘습니다.
(성경적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창세기 7장 11절입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그리고 창세기 8장 14절입니다.
“육백일 년 둘째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밖은 보이지 않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아직 땅은 마르지 않았습니다.
아마 노아도 나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제 괜찮지 않을까?”
“물이 많이 빠진 것 같은데!”
“이쯤이면 나가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자기 생각, 자기감정, 주변에서 부추기는 사람들, 동물의 울음소리가 재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이 아직 나오라고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주 안에 답답하다고 해서,
스스로 문을 열고 뛰쳐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 순간 죽는 것입니다.
물이 아직 남아 있는데 나가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죽음입니다.
이게 단순한 묵상글 같지만, 목사로서 무겁고 무서운 기운을 느낍니다
왜냐? 많이 보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뛰쳐나가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묶인 분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조금 답답해도 말씀이 임할 그때까지 참으세요.
그게 힘입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말씀이 임할 때, 나가면 그때가 가장 좋을 때입니다.
먼저 시작한다고
뛰쳐나간다고 좋은게 아닙니다.
먼저 뛰쳐나간다고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오라” 하실 때 나가야 합니다.
그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그때가 가장 안전한 때입니다.
그때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때입니다.
(창8:15-16)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방주에서 나오고”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