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금요 묵상] 가라앉아야 할 내가, 떠올랐습니다 (창7:17-24)

성경에 떠오르는 예시가 종종 있습니다.
1. 금도끼 은도끼 말고, 성경에는 “쇠도끼”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에 금도끼 은도끼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금도끼도 은도끼도 아니고, 물에 빠진 쇠도끼가 나옵니다.
열왕기하 6장에서 한 사람이 빌려온 도끼를 물에 빠뜨리고 울부짖습니다.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그러자 엘리사는 물에 나뭇가지를 던지자, 놀랍게도 쇠도끼가 물 위로 떠오릅니다.
쇠는 원래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이 닿으면, 가라앉아야 할 것도 떠오릅니다.
2. 노아의 방주는 물이 세상을 덮을수록 잠기지 않고, 떠올랐습니다.
창세기 7:17은 이렇게 말합니다.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불어나니까 세상은 잠겼습니다.
그런데 같은 물 위에서 방주는 떠올랐습니다.
물은 세상을 삼켰지만, 방주는 잠기지 않고, 심판의 폭풍우 속에서도 유유히 떠올랐습니다.
심판의 물이 방주 밖에 있는 자에게는 끝이었지만, 방주 안에 있는 자에게는 오히려 떠오름의 시간이었습니다.
3. 예수님은 물 위에 “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걸어오신” 분입니다.
방주는 물 위에 떠올랐습니다.
쇠도끼도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을 물 위에 간신히 떠 계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밟고 걸어오신 분입니다.
오늘 창세기 7장처럼, 하늘의 창이 열리고, 땅의 깊은 샘이 터져서.
내가 땅 위에 쌓아 올린 것들이 하나씩 눈앞에서 사라지고 물속에 허무하게 잠겨버릴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새와 동물이 심판의 물에 잠겨서 죽었습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라앉아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방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