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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활을 잡으십시오

  • Jun 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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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3장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이고, 또 한 사람은 죽을 병이 든 선지자 엘리사입니다.

 

요아스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괜찮아 보이는 왕이었습니다.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고, 전쟁에서도 승리했고, 죽어가는 엘리사를 찾아가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그래도 저 왕은 괜찮은 사람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란 예배를, 자기 왕권과 불안을 지키는 도구로 삼은 죄였습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예배드리면 마음이 남유다로 기울까 두려워,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여기서 편하게 예배하라”고 한 것입니다.

 

<예배의 편의>를 말했지만, 실제로는 <예배를 조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과보다 예배의 방향을 보십니다. 사람은 실적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런 요아스가 죽을 병에 든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그는 엘리사 앞에서 울며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엘리사의 죽음은 단순한 한 노인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요아스에게는 나라의 영적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때 엘리사는 왕에게 말합니다.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그리고 왕의 손으로 활을 잡게 합니다. 동쪽 창을 열게 합니다. 동쪽은 아람이 있는 방향입니다. 두려움이 있는 곳, 실패가 있는 곳, 다시 마주해야 할 곳입니다. 엘리사는 그곳을 향해 화살을 쏘게 하며 말합니다.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입니다.”

 

이 말이 중요합니다. 내 화살이 아닙니다. 내 싸움이 아닙니다. 내 실력으로 버텨야 하는 전쟁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싸움입니다.

 

그 후 엘리사는 남은 화살을 잡고 땅을 치라고 합니다. 요아스는 세 번 치고 멈춥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노합니다. 대여섯 번을 쳤더라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람을 세 번만 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요아스가 세 번에서 멈춘 것은 단순한 횟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그의 믿음과 갈망이 어디까지였는지를 드러낸 사건입니다. 그는 구원의 화살을 들었지만, 끝까지 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손에 화살을 쥐여 주십니다. 재능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고, 기도의 자리일 수도 있고, 상처투성이의 인생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병든 몸과 약한 마음도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화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숨겨두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세 번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믿음은 톡톡 두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땅을 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전쟁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끊임없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활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케셰트’입니다. 놀랍게도 홍수 후 하나님께서 하늘에 두신 언약의 무지개도 같은 말입니다. 활은 전쟁의 도구이지만, 하나님 손에서는 언약의 표가 됩니다.

 

그러므로 다시 활을 잡는다는 것은 다시 말씀을 잡는 것이고, 다시 예배를 잡는 것이며,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다시 활을 잡으십시오.

다시 말씀을 잡으십시오.

다시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활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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