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수요 묵상] 설계도대로 건축합시다 (창6:15-22)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무너진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건물 용도와 설계도대로 시공하지 않고 구조 계획을 바꾸면서 기둥과 슬래브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지면서 결국은 견디지 못했습니다.
옥상과 상층부에 무거운 냉각탑과 설비, 식당가 등이 더해지면서 건물은 설계가 감당할 수 없는 하중을 떠안게 되었고, 결국 붕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무너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설계도대로 건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계도대로 건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더 많은 돈, 더 많은 사람을 유치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설계도를 바꾸고 무리한 시공으로 이어져 안타까운 생명을 앗아가는 불행을 겪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원과 삶과 예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세 설계도가 있습니다.
1. 노아의 방주는 구원의 설계도입니다.
2. 십계명은 구원받은 백성의 삶의 설계도입니다.
3. 성막은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와 임재의 설계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3종류의 설계도는 모두 구원과 연관이 있고, 하나님이 정하신 길입니다.
이 설계도들은 사람이 설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설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사람은 그 설계도에 따라 순종합니다.
방주도 하나님이 설계하셨습니다.
길이 300규빗, 너비 50규빗, 높이 30규빗, 문 1개, 상중하 3층 구조입니다.
방주에서 눈에 띄는 설계도는 문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방주를 뜻하는 히브리어가 테바인데, 모세가 담겼던 갈대상자도 같은 단어 테바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테바는 홍수의 심판 가운데 생명을 보존했고, 모세의 테바는 죽음의 명령 가운데 한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둘 다 죽음의 물 위에 띄워진 은혜의 상자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방주의 문입니다.
(창세기 6:16b) “...그 문은 옆으로 내고...”
구원의 문이 여러 개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은 그 하나의 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오늘날 기독교가 비방과 공격의 대상에 계속 노출되는 이유는
성직자나 지도자의 부패만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 안의 부패와 타락은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상 속에서 더 깊은 거부감을 받는 이유는 단지 도덕적 실패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독교가 붙드는 진리, 곧 구원의 문은 오직 하나라는 고백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의 유일한 문 외에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문이 없다는 진리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른 종교 안에 있는 도덕적 가치와 헌신을 함부로 조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문은 인간의 선행이나 종교성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방주로 설계하셨고, 삶을 계명으로 설계하셨고, 예배를 성막으로 설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설계도의 중심에는 오직 하나의 문,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더 온유해야 합니다. 더 겸손해야 합니다. 더 오래 참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하는 진리가 좁기 때문입니다. 문은 하나이지만, 그 문을 전하는 우리의 태도는 넓어야 합니다. 진리는 타협할 수 없지만, 그 진리를 전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온유함을 입어야 합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