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화요 묵상] 경계가 무너지면 침몰합니다 (창6:9-14)

1912년 4월 15일 새벽,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배가 빙산 때문에 침몰했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외부적으로는 빙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보면, 생명을 지켜야 할 경계가 끝까지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타이타닉호에는 격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격벽은 충분히 높지 않았습니다. 물이 한 칸을 채우자, 그 물은 다음 칸으로 넘어갔고, 또 다음 칸으로 넘어갔습니다. 결국 배를 가라앉힌 것은 빙산만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경계였습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세상이 무너지기 전에 먼저 무너지는 것이 있습니다.
건물이 아닙니다. 제도가 아닙니다. 경제도 아닙니다.
선을 넘을 때, <경계>가 무너질 때입니다.
창세기 6장은 노아의 시대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포악>함은 원어로, 하마스(חָמָס/ ḥāmās)인데, 폭력/불의/강탈/잔인함을 뜻합니다.
주먹을 휘두르는 것, 언어로 폭력하는 것, 분노를 삼키지 못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행위,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을 도구로 삼고, 내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소중한 것을 밟고 지나가는 행위가 <포악>입니다.
성경은 <포악>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때,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창6:14) “너는...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원하신 것은 단순히 큰 배를 만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배 안에 칸을 만들고, 무너진 경계를 세우는 방주를 만들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땅은 어떠합니까?
<남자와 여자의 경계>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창조질서의 경계도 동성애 합법화란 이름으로 흐려지고 있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도 무너졌습니다. 악을 악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죄를 죄라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히려 죄를 자유라 부르고, 타협을 지혜라 부르고, 욕망을 권리라 부릅니다.
<사람과 물건의 경계>가 무너집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인데, 사람이 물건처럼 취급받습니다. 이용하고, 소비하고, 비교하고, 그리고 다 쓰면 버립니다. 40대의 이른 나이에도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예배와 우상의 경계>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만 예배해야 하는데, 이것이 지겨운지, 이제는 성공과 돈과 인정과 쾌락과 결국은 자기 자신을 만족하는 예배를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때,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칠하라 합니다.
(창6:14) “너는...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오늘 이 아침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포악이 가득한 시대, 선이 없고 경계가 모호한 시대,
너희는 방주를 만들라!
그리고 그 안에 칸막이, 곧 격벽을 만들어
큰 홍수에도 침몰하지 않는 배를 준비하라!
노아의 방주는 여덟 사람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세워야 할 방주는, 더 많은 영혼을 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처로 멈춘 분도 괜찮습니다.
신앙에서 멀어진 분도 괜찮습니다.
다시 하나님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함께 말씀의 경계를 세우고, 함께 생명의 방주를 지어갈 새로운 식구들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당신을 지금 초대합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