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금요 묵상] 누가 알겠나 (창5:1-32)

창세기 5장은 아담의 계보, 족보이다. 누가 누구를 낳고 살고 죽었더라 이것만 딥다 반복한다.
예를 들어,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930세를 살고 죽었더라.
그다음은 <아담 자리>에 <셋> 넣고 뒤에 숫자만 조금씩 바뀐다.
이런 생각이 든다. 누가 읽겠나?
왜, 하나님은 이런 족보를 굳이 넣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들기도 한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아니지만)
창세기 5장은 이름들이 나열된다. 그것도 발음하기도 힘들다.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몇 명이야? 총 10명이네!
어쩌라구!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이름의 목록이고 나열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굳이 하나님이 창세기 5장 전체를 할애해서 이름을 나열하는 이유는 이 사람들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잊힌 인물이고, 관심받지 못하는 이름이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지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리 살아도 누가 알겠나?”
“내가 이렇게 온 시간을 다해 글을 써도 누가 알겠나?”
“사람들이잘 보지 않는 자리에서 예배하고 섬기고 버티는 것을 누가 알겠나?”
“이게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5장에 족보를 할애하여 기록한 것은,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 못하고 몰라줘도, 하나님은 네 이름을 안다!
네 하루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하늘에 있는 내 생명책에는 네 이름을 기록해 두었다. 내가 아담의 이름부터 노아의 이름까지 10명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록해 둔 것을 네가 보느냐?
너의 <흔들림>이 어디서 오느냐?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못하고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해도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기억하고 있단다!!!
음....
다시 성경을 계속 읽어나간다.
이런 생각이 든다. 다 죽었네!
그래, 다 죽었다.
오늘 창세기 5장에서 계속 반복하는 구절은 <살고 죽었더라>입니다.
허무하네, 그래 허무합니다. 그렇다고 다 손을 놓을 겁니까?
10명의 사람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사람은 살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발견하는 놀라운 은혜는
사람은 죽어가는데, 한 사람이 끝나도 하나님의 약속은 죽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쳐도, 하나님의 약속은 지치지 않습니다.
나는 끊어질 것 같아도, 하나님은 은혜의 줄은 계속 이어가십니다.
누가 알지 못해도, 다 알아주지 못해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어디에 당신의 마음과 소망을 두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당신의 마음을 드리세요.
이 아침, 다시 마음을 모아 주님의 이름을 불러 보세요.
주님, 저 아시죠?
제가 여기 있습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