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수요 묵상] 예배가 없는 문명의 성 (창4:16-24)

오늘 본문의 내용은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여 그곳에서 가인의 아내와 동침하여 에녹을 낳고, 그 성을 쌓고,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 성이라 불렀습니다.
이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한 에녹(셋의 계열)이 아닙니다. 이 에녹은 가인의 아들 에녹입니다.
가인의 계보는 에녹에서 이랏, 므후야엘, 므드사엘을 거쳐 라멕에게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라멕은 두 아내를 맞이하는데, 그들의 이름은 아다와 씰라입니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 가운데 우리가 주목할 이름은 야발, 유발, 두발가인 세 사람입니다.
야발은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가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 계보 안에는 놀라운 발전이 있습니다.
목축업이 생기고, 음악이 생기고, 기술이 생깁니다.
삶은 점점 풍요로워지고, 문명은 점점 세련되어 갑니다.
그러나 이 성(에녹성, 가인이 세운 성)에는 예배가 없습니다.
기술은 있는데,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가 없습니다.
음악은 있는데, 찬양이 없습니다.
성은 있는데, 그 성안에 하나님이 없고, 안식이 없습니다.
오늘 창세기 4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은 고대문명의 시작과 그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는 인간 문명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가인의 후손이었던 라멕은 그의 두 아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23절).
“아다야, 씰라야, 잘 들어라.
누가 나를 조금 다치게 했다고? 그래서 내가 그놈을 죽였다.
나를 조금 상하게 했다고?
그래서 내가 젊은 놈 하나를 죽여버렸다”
라멕은 문명이 발달한 성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신 자신의 폭력을 노래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지막 24절은 라멕이 노래처럼 붙인 가사입니다.
“가인을 죽이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칠 배로 갚으신다 했지?
그렇다면 나 라멕을 건드린 놈은 칠십칠 배로 당할 줄 알아라”
라멕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주신 보호의 약속(표)을 자기 폭력의 정당화로 비틀어 노래하고 자랑합니다.
여러분, 끔찍하지 않습니까?
성은 있고, 음악도 있고, 기술과 문명은 있는데, 그 성은 불안을 노래하고 폭력을 노래하고 살인이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성을 쌓았습니다.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하나님을 부르는 예배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고요한 이 아침, 예배가 없는 성 안에서 흘러나오는 비명을 들었습니다.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적인 그림 <절규>는 한 사람이 다리 위에서 얼굴을 감싸고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뒤에는 사람들도 있고, 길도 있고, 도시(성,city)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혼자입니다. 문명 한복판에 서 있지만, 그의 영혼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아벨의 피는 땅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후손들은 그 부르짖음을 외면하며 오히려 더 큰 성을 쌓고, 성안에서 하나님 없는 음악과 가사와 최첨단 시스템으로 세상의 절규를 덮으려 했습니다. 땅이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예배 없는 문명은 인간의 비명을 없애지 못합니다.
다만 더 큰 소음으로 그 비명을 덮을 뿐입니다.
예배 없는 성에는 찬양이 아니라 <절규>가 울립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