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월요묵상] 예배했는데, 왜 안색이 변했나 (창4:1-7)

〈월요 새벽 묵상> 예배했는데, 왜 안색이 변했나 (창4:1-7)
창세기 4장은 성경이 처음으로 보여주는 예배의 장면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가인과 아벨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예배는 다르게 표현됩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릴 때, 단지 제물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배에는 예배드리는 사람과 그가 드리는 제물이 함께 올라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은 제물만 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도 함께 보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은 죄를 지었습니다.
사람은 범죄했고,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죄와 저주 아래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를 창세기 4장은 예배를 통해 보여줍니다.
죄를 지은 사람, 저주받은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치유되고, 위로받고, 회복되는 길.
그 길을 하나님은 <예배 안에서> 열어 보이십니다.
그렇다면 예배는 무엇입니까?
예배는 죄인을 가리시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마침내 완성된 자리, 피 흘려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예배를 드립니까?
그 제물이 무엇입니까?
아벨의 예배는 아담과 하와를 살리신 아버지의 사랑을 붙드는 예배였습니다.
그 사랑의 본체가 되신 분, 피 흘려 죽임 당하심으로 내게 새 옷을 입혀 주신 어린 양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아벨의 예배에는 자기 공로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자기 자랑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자기 의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반면 가인은 땅을 갈고, 일구고, 수고하여 얻어낸 땅의 소산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안에는 그의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의 땀의 결실이 있었습니다.
보기에는 풍성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훌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땅의 소산이라는 제물이 문제라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그 제물 안에 담긴 사람의 믿음과 중심입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예배는 내 땀과 공로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예배는 땅과 하늘을 잇는 유일한 다리가 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길 외에는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입니다.
예배에서 승리하지 못한 가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예배가 자기 의의 자리가 되면, 하나님께 거절당할 때 회개가 아니라 분노가 나옵니다.
예배가 은혜의 자리가 되지 못하면, 얼굴이 먼저 무너집니다.
안색이 변하고, 분노가 얼굴을 뚫고 나오고, 결국 죄가 문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내 공로를 내려놓고, 어린 양의 이름을 붙들어야 합니다.
내 열심을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내가 이룬 것을 들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월요일 첫 시간, 우리의 예배가 가인의 예배가 아니라 아벨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안색이 변하는 예배가 아니라, 얼굴을 드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분노가 터져 나오는 예배가 아니라, 은혜가 흘러나오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공로를 전시하는 예배가 아니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