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금요묵상] 내 인생에 가시가 자라는 이유(창3:17-18)

〈금요 새벽 묵상> 내 인생에 가시가 자라는 이유(창3:17-18)
아담의 범죄 이후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3:17b)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왜 땅이 저주를 받아야 하나? 그것은 아담이 피조세계를 대표하는 청지기이자 왕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나자, 아담이 다스리던 땅의 질서도 함께 흔들렸습니다.
범죄 이전의 땅은 아담에게 열매를 내어주는 복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이후 땅은 순순히 열매만 내어주지 않고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게 되었습니다.
(창3:18a)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범죄하지 않았으면, 완전한 성취가 이루어졌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온전히 거두었습니다. 행복한 것이죠!
여러분, 저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할 때, 열역학을 배웠습니다.
엔진에 100%의 에너지를 넣었는데 100%의 출력이 나온다면, 그 엔진의 이름은 〈에덴 엔진〉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엔진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투입된 에너지가 전부 출력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손실이 생깁니다. 열로 사라지고, 마찰로 사라지고, 저항으로 사라집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이것이 현실의 세계입니다. 손실이 있고, 저항이 있고, 애쓴 만큼 그대로 돌아오지 않는 고단함이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땅이 변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기가 녹록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사람이 땅을 다스리고 경작하는 일이 복된 사명이었는데, 타락 이후에는 일 안에 고통과 저항과 생존의 압박이 들어왔습니다.
성경은 이 땅의 저주를 <엉겅퀴와 가시덤불>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일상과 노동이 고단한 이유는 열매만의 수확으로 인한 땀이 아니라, 잡초와 엉겅퀴와 가시덤불 같은 번외의 일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땅의 저항은 가시덤불과 엉겅퀴입니다.
열심히 일해도 걱정과 염려의 엉겅퀴가 같이 자랍니다.
관계를 잘 세우려 해도 예상치 못한 상처가 불쑥 덧납니다.
가정을 돌보려 해도 갈등의 가시덤불이 함께 올라옵니다.
사역을 해도 낙심의 잡초가 같이 자랍니다.
마음을 잘 지키려 해도 정욕과 비교와 분노가 폭발합니다.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사람은 ‘아담’이고, 땅은 ‘아다마’입니다. ‘아다마’는 경작지, 흙, 땅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땅의 흙으로 지으셨다는 사실은, 사람과 땅이 처음부터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하려 해도 관계에 가시가 생기고 엉겅퀴와 같은 갈등이 생기는 것은 우리 몸이 죄로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만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관계와 삶의 터전 전체에 가시를 돋게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소망이 되시고 기쁨이 되십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내지 않는 새 땅과 부활의 몸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몸소 가시에 찔리셨습니다.
이 가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를 찔렀습니다.
(마27: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첫 아담의 죄로 땅에서 돋아난 가시가, 마지막 아담(고전 15:45)이신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씌워졌습니다.
주님께서 저주를 온몸으로 담당하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원주 기업도시에 있는 작은 시골 교회 목사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