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화요묵상] 빛이 비치면 눈이 열립니다(창1:3-4)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혼돈과 흑암 가운데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그 빛이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합니다(요1:4-9). 하나님은 처음 창조에서 어둠에 빛을 비추셨고, 이 빛을 죄와 사망의 어둠 속에 있는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창조는 구원으로 연결됩니다.
천지 창조에 함께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물과 죄의 권세로 죽어가는 땅(사람들)에 빛을 비추고 그 빛 안에는 생명이 있어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경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께서 행하신 일로 빛을 비추십니다.
그래서 신약의 그리스도가 창세기 1장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빛을 비추면 사람들이 눈이 뜨게 됩니다.
구약에 메시야(그리스도)를 기대하며 메시야가 오면 반드시 일어나는 확실한 증거는 눈을 뜨는 일이었습니다.
(사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사 35:5)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저는 창세기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시각 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고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요한복음 9장의 날 때부터 소경인 자)
그리고 또 하나의 묵상은 욥기 42:5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갑자기 일어난 고난의 일들에 대해 해석할 수 없었고, 해석되지도 않았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는 믿음으로 고난의 시간을 감례하였습니다. 하지만 고난으로 인해 욥을 둘러싼 환경, 즉 욥의 자녀들의 갑작스런 죽음, 욥의 재산의 갑작스런 폭망, 욥의 가장 친한 친구들의 위로를 가장한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비난을 받으며 욥은 그저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추실 때까지! 하나님의 창조가 욥의 고난에 빛 비추실 때까지!
하지만 욥기 39장에서 시작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을 들으면서 욥은 눈이 열리게 됩니다(고난이 해석됩니다).
창조를 통해 하나님은 고난의 신비와 비밀에 빛 비추어 주실 때 욥은 그제야 위대한 고백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욥42:5)“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나님이 빛을 비추면 그래서 우리의 땅은 회복되고, 우리의 죄로 얼룩진 영혼은 빛으로 인하여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비추면 오랫동안 해석되지 않던 고난의 문제도 해석되어 눈을 뜨게 됩니다. 욥의 눈이 열린 것이 고난의 공식을 알아서가 아니라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묵상이 내일의 소망이 아닌 오늘(현재) 열리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 원주 기업도시 시골 교회 목사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