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금요 새벽 묵상] 준비된 사람이 나타나기 전 (창세기 41:1-9)
전기가 통하듯
꿈이 계속 통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꿈이
지하감옥에서 술맡은 자의 꿈으로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애굽의 바로의 꿈으로 퍼저나가고 있습니다.
작은 누룩이 큰 강국을 이루듯
하나님이 사람에게 넣어주신 작은 꿈이 이제는 바로 왕의 꿈에까지 나타납니다.
꿈은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과 언어로 나타나듯
하나님의 꿈이 사람의 꿈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모든 꿈이 하나님의 꿈이 아닙니다. 꿈도 거짓 꿈, 말씀도 거짓말, 거짓 예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오해나 태클로 시간 낭비는 NO)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 엄청난 소요(아이 학살, 예루살렘 시내 동요 등)가 일어났던 것처럼,
하나님의 꿈이 사람에게 임하면 역시 소요(형제들의 시기, 술맡은 관원장의 복귀, 떡굽는 관원장의 죽음 등등)가 일어납니다.
그 꿈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은 꿈으로 소멸되지 않고 실제 살아서 그 시대와 환경 가운데 엄청난 파장(7년 풍년, 7년 대흉년)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바로 왕에게 임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로 왕이 나일 강가에 섰는데,
아름답고 살진 암소 일곱 마리와 흉하고 파리한 암소 일곱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흉하고 파리한 소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었습니다.
곧 이어 또 다른 꿈을 꿉니다.
이번에는 충실한 일곱 이삭을 보았고 그 후에 나온 가늘고 마른 일곱 이삭이 먼저 충실한 이삭을 삼키는 꿈을 꾸고 바로는 놀라서 깹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은 하나님의 소관에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일이 사람에게 꿈으로 임하면 사람들은 엄청난 번뇌와 갈등과 혼란을 겪게 됩니다.
바로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다니엘도 그러했습니다.
미래의 계획표가 사람에게 임할 때, 두렵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떨립니다.
그 엄중한 하나님의 계획표를 받은 바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니다.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모든 현자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꿈을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해석하지 못합니다.
(창41: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사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미래에 대한 해석은 지난 날의 통계로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현자나 학식이 풍성한 자들의 이성으로도 안됩니다.
꿈을 꾼자
즉 하나님의 꿈을 말해 본 경험이 있는 자,
그래서 그 깊이와 무게를 견뎌본 자가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단련된 사람
꿈을 말하고 그 꿈을 말한 자의 대가를 경험하며 단련된 사람에게
새로운 질서와 시대가 준비됩니다.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