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금요 새벽 묵상] 주님만 바라봅니다 (창세기 38:12-30)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사람의 딸과 결혼한 <유다>는 어떠한 이유인지 그때부터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첫째 아들 엘이 죽고
둘째 오난도 죽고
셋째 셀라는 겁이 나서 계대결혼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형수와 결혼한 형들이 줄줄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셋째는 아직 어린아이고 다말과 결혼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나이입니다.
가나안 여인, 다말이 문제의 원인이다.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도 죽음을 맞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야곱의 집안 이야기!
그리고 오늘 유다의 집안 또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막힌 일들이 줄줄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네줍니다.
“너희 시아버지 유다가 아내 장례를 마치고 마음이 곤하여 자기의 양털을 깎으러 <딤나>에 있다” 고 전해줍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며느리, 다말은 지금껏 입고 있던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창녀의 모습으로 길가에 서 있습니다.
유다는 길을 가다 창녀의 모습으로 서 있는 한 여인을 보고 그에게 들어갑니다.
(16절)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데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당장의 돈이 없었던 유다는 그가 지니고 있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담보>로 맡기고 다말과 동침하여 임신합니다.
이후 유다는 친구를 보내어 돈을 주고(염소 새끼) 담보물을 찾으러 그 여인이 있던 곳으로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그 여인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창녀가 있는 동네가 아님을...
(21절) “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그리고 3달이 지난 후 며느리 다말을 만났는데, 배가 불러왔으며 또 누군가가 당신의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여 임신하였다 말하니 유다가 화를 내며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합니다.
선과 악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유다가 선을 베풀어 요셉을 살린 것처럼 보이는데,
사람이 베푼 선은 곧 악이라는 실체를 드러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가나안 여인이 아닌 신앙의 여성과 결혼하지 않은 유다!
그 아들들도 죽고
아내도 죽고
창녀로 위장한 다말과 행음하여 임신이 되고
며느리로 임신하게 한 장본인이 자기 자신인 줄 모르고,
선한 사람처럼 화를 내며 다말을 불태워 죽이라 합니다.
인간의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함을 보는 안타깝고도 소중한 본문입니다.
너무 선하게 보이려고 애쓰지 마세요.
죄를 지으라는게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기가 찬, 끔찍하고 입에 담기 어려운 유다의 지파로 오셨습니다.
무슨 베짱으로!
베짱보다 더 높은 자존감으로!
유다의 지파로 오셔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죄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의 <후회>와 <회피>와 <위선>에 찌들린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유다의 지파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 인생의 굴곡이 많은 유다도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정죄하실 겁니까!
그저 주님만 바라볼 뿐입니다.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