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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새벽 묵상] 회피, Evasion (창세기 3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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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장은 유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그리스도께서 유다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봅시다.

유다는 얼마나 잘 했는가?

 

어제 본문에서 유다는 한 건 했지요?

동생 요셉을 구덩이에 넣고 죽이지 않고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아 손에 피를 묻히지 말자고 제안하여 형제들 사이에 제법 공신력 있는 인물로 등극했지요.

 

그리고 함께 아버지를 속이고 형제들과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후에 유다가 자기형제들로부터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눈에 가시였던 동생 요셉을 팔아버리는 일에 일등공신이었던 유다는 더 행복했을까요?

 

성경은 누가 더 옳고 나빴다를 표면적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속 안에 있는 결정적인 죄가 드러났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사람들과 모여 있는 자리, 오고가는 거를듯한 대화와 모임이 유다로 하여금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일으키지 못하게 합니다.

 

단순한 자율신경계의 문제일까요?

그토록 바라던 것을 얻었지만 그것이 주는 허무함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을까요?

성경은 그 어떤 단서도 힌트로 내주지 않은 채, <그 후에 유다가 떠났다> 기록합니다.

 

회피입니다.

 

사람들은 회피가 무책임하다라고 말합니다.

 

왜 회피합니까?

마주 대하여 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주도하여 동생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팔아넘기고, 채색옷에 동물의 피를 발라 이것이 동생의 마지막 유품이라고 아버지에게 건네며(형제들과), 아버지 야곱의 슬픔에 함께 울고 연기해야 했던 인간의 그 잔혹한 실체를 날마다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저항과 거부감이 발생하면 그 심리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계이죠. 보통 회피를 선택합니다.

 

성경은 회피한 유다가 기껏 선택한 땅과 사람과의 만남과 그로 인해 새롭게 꾸려진 가정을 소개합니다.

 

유다는 아버지 집을 떠나(약속의 집) 가나안 사람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첫째는 엘

둘째는 오난

셋째는 셀라

 

그리고 유다는 장남 <엘>을 위하여 다말이라는 며느리를 데리고 옵니다.

 

회피하고

떠나고

선택하여 가정을 꾸렸는데

 

그 가정 안에서

장자 엘을 하나님이 먼저 데려가십니다.

 

(7절)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그 당시 팔레스타인 법에 형이 죽으면 형 대신 동생이 형수와 다시 연합하여 씨를 계승하는 보편적인 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라고 하고

또 사회법이 하라고 하지만

그래서 둘째 오난이 마음에도 없는 형수와 결혼하여 그 씨를 이어가야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들을 낳아도, 이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고 형의 후손이 되기에 그러한 책임을 굳이 감당해야 하나 그리고 자신의 이익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형식적 관계(부부의 연, 결혼생활 등등)는 연기하나 출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상황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9절)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심고 물을 주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어차피 이렇게 수고했도 내 것이 되지 못한다는 악한 생각으로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역을 훼방하려 했을 때,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이 되었습니다.

 

(10절)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큰 아들은 하나님이 악하다 하여 먼저 죽고

둘째 아들은 어차피 내것 아니라고 하여 시늉만 내다가 또 죽고

셋째는 형수랑 결혼하면 죽을 것같아 염려에 빠져 떨고 있고...

 

회피가 틀렸다는 것을 정죄하려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실수하고 실패하고 회피하여 뭔가를 시도하여 으개쓰러지고 깨어져 버린 그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이어가십니다.

 

그것이 성경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깊음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자신을 보고

하나님을 보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화학반응인 회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게 됩니다.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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