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화요 새벽 묵상] 구덩이 위의 점심 식사 (창세기 37:16-24)

요셉에게 채색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는 채색옷을 입고 아버지의 기쁨이 되었으며, 아버지가 맡기신 심부름을 수행하기 위해 세겜을 거쳐 도단까지 성실히 걸어갔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자랑스러운 기쁨이었던 그 채색옷이, 형들에게는 견딜 수 없이 불편한 가시였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자랑스러운 기쁨이었던 그 채색옷이, 형들에게는 견딜 수 없이 불편한 가시였습니다.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입고 있던 옷부터 벗깁니다.
그 사람을 지탱하던 신분과 정체성을 강제로 박탈하는 것입니다.
도단에서 일하던 형들은 멀리서 채색옷을 입은 ‘꿈쟁이’ 요셉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들이 요셉을 보자마자 곧 시작한 것은 죽이기를 꾀했다고 말합니다.
(18절)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요셉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셉의 말투
요셉의 채색옷
요셉을 향한 아버지의 편애, 이 모든 것이 형제들에게는 불편했던 것입니다.
형제들은 서로 말합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아버지에게는 악한 짐승이 와서 잡아 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자 우리가 보자라고 합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사람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한 대목입니다.
결국 말대로 구덩이에 집어 넣습니다.
요셉의 채색옷은 벗겨지고, 속옷만 입은 채, 물이 없는 구덩이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불편했던 요셉은 구덩이 아래에 넣은 채 위에서 도시락을 까먹습니다.
이것이 채색옷을 입은 자와
채색옷을 입지 못한 자 사이의 불편한 진실입니다.
야곱이 있는 집에서는 형제들이 요셉을 함부로 하지 못하지만 아버지가 없는 <도단 광야>에 이르자, 통제선이 사라졌을 때, 인간 내면의 시기와 폭력성이 그대로 표출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국가 간, 계층 간, 집단 간에 일어나는 모든 격렬한 소요들은 채색옷을 입은 자와 채색옷을 입지 못한 자 사이의 갈등을 표현해 줍니다.
누가 옳은가, 누가 틀렸는가를 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 사이에는 <도단>이라는 통제선이 사라지는 지점이 생길 때, 언제나 격렬한 소요와 인간 내면의 잔혹함이 언제든 고개를 들 수 있음을 오늘 말씀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기 동생을 구덩이 아래에 밀어 놓고도 유유히 식사를 즐기는 형제들의 모습에서, 오늘 당신은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24-25a)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