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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새벽 묵상] 알론바굿-통곡의 상수리 (창세기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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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딱 한 절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8절입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뭘 묵상하느냐면, 8절에 갑자기 유모 드보라가 죽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앞에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중요한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에 반응하여 세겜을 떠나고, 끊지 못하던 자신들만이 우상들을 상수리 나무 아래에 뭍습니다.

 

그리고 9절 이후에는 또 하나님이 나나나서 야곱에 복을 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잘했다. 네가 내 말대로 순종하니 이스라엘이라고 이름도 추켜 세워주십니다.

 

그런데 8절에 갑자기 드보라가 등장하고 또 죽고, 상수리 나무 밑에 장사하고 알론바굿이라 이름을 붙입니다.

 

그냥 지나치려 하다가 계속 마음에 걸려, 8절을 두고 지금 글을 써 내려갑니다.

 

왜 이 부분이 성경에 기록되었을까?

35장의 분기점입니다.

뭔가 있다는 것이죠!

 

드보라는 리브가(야곱의 어머니)의 유모입니다.

리브가가 이삭과 결혼하기 위해 밧단아람에서 나왔을 때, 함께 나왔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를 등장시키고, 죽고, 장사했을까?

뭔가 있지 않을까!!!!

 

몇가지 유추하고 생각해야 할 것은,

야곱은 에서의 살인을 피해 밧단아람으로 피해 갔을 때, 분명 혼자였습니다.

그런 이후 그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또 어머니가 필요로 했을 때, 브엘세바(가나안 땅)에 있던 리브가(야곱의 어머니)는 그의 유모 드보라를 자신 대신에 야곱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함께 보모로 그 역할을 하며 도왔던 것입니다.

 

진짜 어머니는 아니지만

어머니 리브가가 드보라를 야곱 곁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가 오늘 35장 8절에 야곱의 중요한 전환기에 드보라의 죽음과 장사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이것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 개혁의 박차를 가하는 새로운 도약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35장 1-7절까지 야곱에게 임한 말씀으로 인한 개혁, 즉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에

1) 이방신상들을 버리고

2)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3) 의복을 바꾸어 입는

 

대대적인 개혁을 하게 됩니다.

 

그 결정적인 클라이맥스의 개혁이 세겜의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데

그곳에서 모든 신상과 몸에 걸친 우상들을 묻어 버립니다.

 

(4절) “그들이 자기 손에 잇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온전히 정리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야곱과 야곱의 가족과 야곱의 식솔들의 위협 즉 안전이 완전히 보장되었습니다.

 

며칠 전 디나 강간 사건으로 열받은 시므온과 레위의 칼부림으로 인한 보복의 두려움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반응, 즉 우상을 버리는 온전한 순종, 반응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 자유는 무엇입니까? 더 이상 그 일로 인한 근심이 사라진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 일 후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고, 상수리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알론바굿이라 부르게 됩니다.

 

두려움의 문제도, 근심의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우상도 버리고 잘했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지금 벧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지금까지 리브가 대신 보모로 함께 해온 드보라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합니다.

 

이것이 성경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스토리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인생 속에 알론바굿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이별도 있고, 가슴에 묻어야 할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통곡의 상수리나무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나무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는 것, 통곡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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