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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새벽 묵상] 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인가? (창세기 25: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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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과 리브가를 통해 쌍둥이 야곱과 에서가 났습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 되었고,

야곱은 집에서 거주했습니다.

 

이것을 오늘날로 말하면

에서는 자라서 사회에 진출하여 고액의 연봉을 받는 전문가가 되었고

야곱은 취직도 못하고 집에서 빈둥빈둥거렸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두 자녀에 대한 부모의 평가를 서로 다르게 기록합니다.

 

28절입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리브가는 엄마이고 여성이기에 조용한 성격인 야곱을 좋아했을까?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하지만 두 아이를 임신했을 때 주님이 주신 말씀을 늘 마음에 두었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 말씀을 분명 리브가는 이삭에게게 서로 전하고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이삭도 나이가 들어갔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의 말씀보다 바깥에서 전문가 소리 듣고,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때마다 아버지에게 용돈(에서가 잡은 고기)드리는 효자 같은, 자식 같은 <에서>가 눈에 들어옵니다.

 

일리 있지 않습니까?

취직도 하지 않고, 집에서 빈둥빈둥하는 야곱보다

아버지 입장에서 들에 나가 사냥해서 입에 고기를 넣어주는 아들이 더 듬직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삭은 나중에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할 마음을 가집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하갈을 통해 자식을 낳는 불순종은 하지 않았지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말씀하신 예언의 말씀에 대해 온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 경향성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해도 하나님은 사람의 계획대로 되지 않게 하시는 것을 보게 합니다.

 

우리의 눈에는 집에서 빈둥빈둥하는 야곱보다 에서가 훨씬 자녀답고 자랑스럽게 여겨집니다.

 

뭔가 결단하면 400명 거느리고 폼나게 합니다.

멋있지 않습니까?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에 고기 반찬 올리는 효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고 그렇게 여기는 관점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에서에 대한 평가는 어떠합니까?

 

로마서 9:11-13입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삭이 착해서 선택되고 에서가 악해서 탈락한 것이 아닙니다. 둘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언약의 계보를 야곱을 통해 이어가기고 정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은 고기를 갖다주고 뭔가 퍼포먼스가 있는 행동력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그 내면에 명분을 더 귀히 보십니다.

 

에서는 사냥하고 돌아와 배가고픈 때 동생이 죽을 쑤는 것을 보고 그 팥죽을 달라고 하자,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팔면 주겠다고 합니다.

 

에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십시오.

 

32절입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팥죽 한그릇 안먹어서 죽지 않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팝니다.

 

성경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라고 말씀합니다.

 

결코 팔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궁해도 당장 급해도 죽으면 죽었지 팔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입니다.

 

팥죽과 같은 돈, 성공, 꿈의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팔아가면서 사업하지 마시고,

생명을 팔아가면서 뛰어다니지 마십시오.

 

생명은 팔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당신의 소중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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