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월요 묵상] 세상 한복판에서 타협할 수 없는 가치(창세기 24:1-9)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늙은 사람에게 가장 큰 가치와 복은 무엇이겠습니까?
아브라함만큼 나이가 많이 들지 않아서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 나이가 된 아브라함이 무엇에 가장 큰 관심과 가치를 두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계승>입니다.
자신을 고향에서 불러내셨던 하나님의 역사와 비밀을 아들에게도 그대로 계승하고 싶은 것입니다.
단순히 재산과 물질과 사람을 다루는 법, 위기 대처법 등등 말고 이것보다 더 귀한 가치를 계승해야 하는데, 이것을 이어갈 이삭의 베필을 찾는 것이 늙은 아브라함에 자식에게 해 주어야 할 중요한 사명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자식의 베필은 알아서 찾거나 알아서 하게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아주 민감하죠).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삭의 베필이 될 사람을 지금 정착하고 있는 가나안 땅의 여인 중에서 찾지 않습니다.
가나안 족속과 동맹도 체결하고 그 부족 사람 중 아리따운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하여 들이는 것이 세상적 관점과 가치로 볼 때 훨씬 유리하고 좋아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종을 통하여 자신이 나왔던 고향으로 가서 며느리 될 사람을 찾아오라고 합니다.
요즘 시대에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죠.
아버지가 간섭하고,
또 아버지가 가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시종을 시켜 며느리 될 사람을 찾아오라는 것!
쉽지 않죠!!
아브라함은 왜 가나안 여자들 며느리로 찾지 않았을까요?
구지 왜 고향 사람에게서 찾으려 했을까요?
우선은,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빠진 여인을 통해 씨를 이어갈 수도 없고 하나님의 약속을 계승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놀라운 시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고향 땅에서 불러내어 복이 되는 인생을 지금의 노년까지 하게 하셨던 것처럼,
똑같이 이삭의 베필이 될 여성을 하나님은 미리 알고 계시고 종을 보내어 그 땅에 가면 미리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게 할 것이고, 또 제안하면 따지지 않고 순조롭게 그 땅을 나와서 아브라함의 집까지 따라올 여성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와 이러한 예상과 기대로 사람을 보내 며느리를 구해오게 합니다.
아브라함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로 고향을 떠나왔듯
자기와 똑같은 한 여성을 하나님이 예비시키신다는 믿음으로 종을 보내려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신도 말도 안 되는 부르심에 고향을 떠났던 것처럼
이삭의 베필이 될 여성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말도 안 되는 부르심에 따라나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며 나도 이런 믿음을 보게 했으니 이런 믿음으로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저 같은 사람도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목회하게 하셨는데,
이 교회를 섬길 사람도 하나님이 말도 안 되는 부르심으로 오게 하시고 채우시겠다는 믿음으로 이 하루를 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