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금요 묵상] 약속을 따라 난 자 (창 21:8-21)

오늘 본문은 아주 중요한 인사이트를 담고 있습니다.
두 종류의 웃음이 등장합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이츠하크)
이삭은 100세의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나 이제 젖을 떼고, 젖을 떼는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젖을 떼는 날은 단순한 생일 잔치가 아니라 이삭이 아브라함의 정통의 상속자로서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이삭을 모든 식구들이 기뻐하고 환영하는 날입니다. 웃음과 기쁨이 넘치는 이삭의 날이었습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는 이 잔치날에 유심히 이 날을 관찰하며 살핍니다.
이삭과 이삭이 젖을 뗌으로 상속자로서 확증이 나는 이 날, 모든 사람들이 이삭을 인정하고 기뻐하는 이 날, 조롱썩인 웃음을 보내는 한 사람을 사라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유일한 상속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삭이 태어나고 죽지 않고 젖을 떼는 그날, 이스마엘은 이삭을 동생으로, 상속자로 인정할 수 없는 조롱 섞인 웃음을 보내었던 것입니다.
9절입니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의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놀리다의 히브리어는 메차헤크입니다. 조롱하다, 희롱하다, 비웃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환영과 축복의 웃음으로 기쁨을 보낼 때, 유일하게 한 사람이 이삭을 향해 조롱과 희롱을 보내었던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나이는 이삭이 젖을 뗄 때 약 16세 정도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청합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아브라함은 심각한 갈등과 근심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식이요.
이삭도 아브라함의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깊은 고민과 근심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습니다.
오늘 본문을 그냥 한 가정에 일어나는 단순한 이야기로만 보면, 사라가 민감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이러한 형태로 사람과 상황을 해석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다시 거론하며 해석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깊은 통찰을 얻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4:29말씀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단순한 어린 아이 장난이나 비웃음이 아닌 박해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난 씨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하시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아브라함이 100세에 주신 이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고 복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조롱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과 경륜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조롱하고 박해하는 육체의 태도였던 것입니다.
약속에 대한,
언약에 대하여 조롱은 결국은 박해와 분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갈등과 고민이 있을 때, 인간적으로 해결이 안됩니다.
근심을 그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결정하면 하나님이 이후의 모든 일을 가장 선하게 매듭지으십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