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수요 묵상] 하나님만 바라라 (창 20:8-18)
무엇을 설교할 것인가?
어떻게 이 본문을 해석할 것인가?
엄청 중요하다.
누군가는 내가 해석하고 제시한 방향대로 그들의 삶을 올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해석을 주님께 맡기며 글을 적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내려가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호칭을 바꿉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렇게 합의했고, 그래서 막상 그랄 땅에 가니 사람들이 사라의 미모를 보고 왕 아비멜렉에게 데리고 갑니다.
아브라함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아름다운 사라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을 알고 혹 옆에 있는 아브라함이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당시 행해오던 풍습대로 아브라함을 살인했을 것입니다.
저도 실수를 많이 합니다.
어떤 실수를 합니까? 도덕적, 윤리적으로, 교훈적으로 본능적으로 설교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고백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죽음의 위협에도 실제로 그렇게 될지라도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다시 심각한 질문에 봉착합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를 범하지 마세요.
아브라함처럼 살지 마세요. 맞습니다. 맞고 옳은데, 그게 잘 됩니까?
거짓말하지 말아야 하는데, 아내를 누이라고 자기 살겠다고 거짓말해야 하는 아브라함!
애굽에서 큰 경을 쳤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지라고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아브라함은 또 반복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이것이 실수입니까? 아니면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입니까?
죽음 앞에!
생존 앞에!
거짓말하고, 도망가고, 회피하는 것!
잘못된 것 맞는데,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그 잘못을 고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물질문제로 인하여 깊은 절망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관계문제로 인하여 개인과 타인 사이에 소망이 없음을 경험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해결책을 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너무도 연약하고 무능하고 어쩌면 아브라함보다 더 무능하고 무책임한 죄인의 개수입니다. 저에게 기대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언약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화창한 8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혹독한 8월>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한 가지 분명한 소망은,
당신은 언약으로 살아야 하며, 언약으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언약의 주체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분명히 잘못된 것은 알지만 현실 앞에 무너진 그 때에도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아내를 포기하고 거짓말을 하며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비겁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직접 그랄 왕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막아서시고, 사라의 순결과 아브라함의 목숨을 구원해내십니다.
우리가 8월, 이 본문을 대하면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합니까?
사람에 대한 환상을 깨십시오.
아브라함도 우리와 똑같고 자기 살겠다고 아내 넘기고, 치졸하고, 거짓말하는 실수 투성이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발견하는 유일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삶의 한계에 부딪혀 반복적인 문제를 직면할 때,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믿음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버리지 않고, 대적을 물리치며 아내를 구원해내며, 물질의 문제까지 채워주셨습니다.
(창 20: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35도로 치솟는 감당치 못하는 더위만큼이나 당신의 호흡을 턱턱 막아버리는 8월을 지나시는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 계시고, 당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건지시고 구원해내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