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원주 기업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골교회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묵상입니다.
[화요 묵상] 큰 은혜 앞에 시험이 있다 (창 20:1-7)

지난 주일 설교, 8월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해야 합니다. 뭇 사람을 존경하고, 이웃 사랑해야 한다고 하고 나서 과연 일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병원하고, 갑자기 주차해 놓은 차를 긁고 지나가고 사이드 밀러만 스크래치 났다고 하면서 전화가 오고, 확인해 보니 차량 휀더가 들어가고 망가졌는데, 다행이지? 불행인지? 블랙박스는 고장이 나서 없는 상태고,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창세기 20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함께 식탁교제도 나누고 내년 이 맘때에 아들을 낳는다는 매우 기쁜 소식을 주셨습니다.
1년을 잘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큰 은혜를 보아야 할 사람 앞에 일상은 조용히 지나가지 않습니다.
흔들 수 있는 것은 다 흔들어댑니다.
그것이 사탄의 시험인지, 하나님의 시험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흔들림이 있어도 1년 안에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성취가 1년이 남았을 때, 그 1년 안에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소돔 성에 불과 유황으로 완전히 불타 사라집니다.
화려한 도시, 풍요로운 도시가 하늘의 불심판으로 하루아침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 광경을 멀리서(헤브론) 바라본 아브라함은 어떠한 이유이든 그가 지금 살고 있는 헤브론을 떠나 애굽 방향의 길목인 그랄 땅으로 내려갑니다.
왠지 불길하죠!
아마 목초지 문제, 목양의 문제로 더 이상 헤브론에 있을 수 없어 떠났으리라 예상됩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목양의 문제로! 목초지의 문제로! 먹고 사는 문제로 이동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인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본능으로 움직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선지자인데, 그리고 중보자적 위치에서 중보의 기도를 하는 사람인데도 <새사람>으로 움직이지 않고, <옛사람>으로 움직였습니다.
예수 믿고도, 주의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옛사람의 본능이 툭툭 튀어 나옵니다.
이거 위험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
고백의 변질
예배 안드렸습니다. 소돔 성 망하고 마음이 불편한지, 노아가 세상 멸망한 후 새 세상 속에 포도나무 농사짓고 얼마 안 가서 마음이 괴로워 술을 먹고 취해 넘어졌듯, 아브라함도 풍요로운 도시 멸망하고, 롯의 아내-조카 며느리는 소금기둥이 되고, 롯은 괴로워 술 먹고 자기 딸들과 동침하여 임신하고... 세상이 기막히게 돌아가는 것 보면서 그도 마음이 예배와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고정되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하여튼, 그랄 땅으로 이주 후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아내라고 부르지 못하고 누이라고 부릅니다.
또 왜 이러는 겁니까?
불안한 것입니다.
그랄의 사람들이 사래의 미모를 보고 자기가 남편인 것을 알면 죽일 것같은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8월에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죽을 각오로 자기 아내를 지키는 겁니다.
아내를 아내라 불러야 합니다.
아내를 아내로 고백하지 못하고 누이라고 비겁하게 전락시키면 사랑이 안되는 것입니다.
20장 2절은 아브라함의 연약한 모습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전합니다.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고백이 바뀌면 자기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깁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이삭이 태어나야 하는데, 그 이삭이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전쟁이 아브라함에게 소돔의 문제, 멸망, 이주문제 등으로 칩입해 옵니다.
잊지 않고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내년 이맘 때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
사탄은 그 아들을 낳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방해하며 대적합니다.
아들을 빼앗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요한일서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8월에는 사랑입니다.
당신의 가정에 이루실 큰 기쁨, 이삭이라는 아들이 일어나리라는 소망을 붙잡고 당신의 일상 가운데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불상사를 지혜와 온유함으로 잘 처리하시길 축복합니다.
- 원주 기업도시, 작은 교회 목사의 묵상
